회고록) 내 기억속의 Microsoft
위키의 묘미 중 하나는 바로 이리저리 연결된 레퍼런스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게 생각치 않게 궁금증에 다른 문서들을 읽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위키를 읽게 됩니다. 그렇게 오늘도 위키를 보다가 우연히 Microsoft 개발 문서를 읽었는데, 오래간만에 보는 내용들이 나오니 반갑기도 하고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더랍니다. 새로운 윈도우가 나오면 흥분과 동시에 입수(?)하지 못해 안달났던 시절이 있었죠. 생각난 김에 이야기를 쭉 써 보았습니다.
1. Windows 9x 시절 — 컴퓨터로 이것저것
제 첫 컴퓨터는 사실 아버지가 어디선가 주워온(?) MS-DOS 시절로부터 시작하지만, 그걸로 막상 뭔가 많이 한 건 없었습니다. 이상한 골프 게임 하나 해본 게 전부라서요. 본격적인 제 컴퓨터 라이프는 친적집에서 던져준 펜티엄3 컴퓨터의 Windows 9x(95인지 98인지 불분명) 이었습니다. 느리긴 해도 이쁘장한 컴퓨터 본체에, 모니터에 뭔가 나오는 걸 보고 있으니 너무 신기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그걸로 뭘 했는지 기억은 별로 없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어디선가 펜티엄2인데, 클럭이 더 높은 633 Mhz 였나, 다른 컴퓨터가 하나 더 생깁니다. 이 컴퓨터가 생기고 나서는 슬슬 게임에 맛을 들여서, 메이플스토리와 스타크래프트를 열심히 했습니다. 등짝 맞아가면서 했었던 기억이 있네요. 여기까지는 평범한 전형적인 초딩이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어느날 도서관에서 “멋있는 웹디자인 100선 소개” 비스무리한 책을 읽게 됩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세상이 저에게 열립니다. 당시에는 웹 브라우저에서 no frame이 지원되어서 custom title bar 같은걸 만든다거나, 그리고 플래시로 아주 멋있게 사이트를 만드는 게 대세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따라 만든답시고 열심히 삽질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프로그래머로 진화…
이 책이 그렇게 뽕이 찼는데 … 요즘은 플래시가 다 죽어서 ㅠㅠ…
그 와중에 또 괴상한 책을 하나 보게 됩니다. 무려 200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레전드 저작권 실태를 알려주는 책… 와레즈 사용법에 관련한 책이었습니다. 무려 국립도서관에 있었습니다!
이걸 보면서 열심히 해적질을 하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컴퓨터로 이것저것 구해다 쓸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나게 됩니다. 마치 해적왕이 되려고 모험을 떠나는 루피가 흡사 생각이 나네요
사이버 해적왕, 시기상 2000년대 초반이면 꽤 적절할지도?
2. Windows Me
그러다가 어느날 토렌트에서 Windows Me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니 너무 궁금하잖아? 그래서 열심히 해적질 해서 깔아봅니다. 물론 아버지한테는 굳이 왜 일을 만들어서 하냐는 잔소리를 들으며 …
근데 (당시) 생각외로 뭔가 특별한 건 없더라고요. 그리고 뭐 특별히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블루스크린이 더 자주 떴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컴퓨터로 뭔가 크게 하질 않으니 별 차이가 안 느껴져서 그냥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리고 이때 당시만 해도 컴퓨터 잡지가 참 많이 유행했던 것 같습니다. 잡지에서 미지의 운영체제나 유틸리티 이야기를 보고 뽕에(?) 차 올랐던 시절이 있었네요.
별도) Windows 2000
정작 Windows NT와 2000은 안 써봤습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호환성 문제때문에 안 썼는데, 왜냐하면 괜히 멀쩡한 프로그램 안 켜질까봐 두려웠던 것도 있고, 이게 저만 쓰만 컴퓨터가 아니라 가족이 쓰는 것도 컸을 겁니다. 잡지에서도 쓰지 말라고 함
근데 여유가 있었다면 한번쯤 써봤으면 어떨까 싶네요. NT 커널의 안정성에 당시의 가벼운 운영체제… 어떤 맛일까… 궁금!
3. Windows XP
윈도우 XP, 정말 오래 썼죠. NT 커널을 도입한 이후로 눈에 띄게 안정적인 성능에, 하드웨어의 발전에 힘입어 나름 훌륭한 체감 성능까지.
나름 명품 운영체제였던 만큼 참 많은 튜닝과 추억이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몇 개 정리해 보자면…
1) 커스터마이징 운영체제 재배포
해적질+커뮤니티관종질+Geek이 합쳐져서 생긴 괴물들(?)이 여러 윈도우 배포판을 내놓게 되는데, 그 수가 정말이지 엄청납니다. 한때 지인이었던 NEX 분이 만든 배포판도 있었고, 가장 유명했던 건 Windows BlackEdition (특유의 블랙테마)였을 겁니다. 온갖 패치는 기본이고, 자체 윈도우 최적화 및 트윅+테마적용까지 다 해서 인스톨해주는 덕에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을 겁니다. 심지어 공공기관 PC에도 깔렸던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2) 운영체제 전문가 블로거/커뮤니티 양산
(1)에 힘입어, 운영체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이와 관련된 정보를 배포하는 블로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됩니다. 주로 신 운영체제 빌드 스크린샷이나 혹은 유출 등의 이야기들로 뗄감을 열심히 지피는데, 정말 보고만 있어도 흥미진진합니다. 아x몬드 블로거라던가 ZDnet라던가 등등… 유출본을 구하려고 토렌트 밤새 켜놓는 것도 하나의 컨텐츠였죠.
3) 써드 파티 툴
관련 튜닝을 해주는 써드 파티 툴을 사용하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xp 테마를 저세상으로 꾸며주는 가젯 소프트웨어를 깔거나, uxtheme.dll 을 수정해서 테마를 바꿔주는 VistaGlazzer이라던가… 정말 운영체제 자체가 이만큼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게 windows 상에서는 이게 처음이자 끝이 아닐까요.
윈도우 좀 꾸민다~ 했던 사람들의 평균 테마
4) 윈도우 유출본 깔아보기
이 때까지만 해도 윈도우는 하나의 “완성품”으로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보니, xp 이후 다음 (비스타) 윈도우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열심히 유출iso 파일을 받아서 멀티부트로 설치하곤 했죠. 하필이면 또 화려함의 극치였던 운영체제라, 보람찬 맛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윈도우를 마구 만지면서 사랑(?)에 빠지다 보니, 아무래도 이 때 즈음에 윈도우와 마이크로소프트에 가장 기대가 높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윈도우에서 일하면 나도 이런 걸 만드는 걸까? 하면서 기대를 마구마구 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 현실의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시궁창이지만…
4. Windows Vista
유출본을 깔면서 계속 뽕을 채우다가, 결국 vista가 나왔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직 한창 해적질을 했던 시기로 기억하기 때문에, 또 해적을 해서 열심히 설치를 했었습니다. 역대급으로 화려한 운영체제에 눈이 휭~ 돌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화려함 자체는 어쩌면 윈도 11보다 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지금봐도 간진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도 자체는 많이 줄었습니다. 아무래도 커널이 올라가면서 호환성도 많이 줄고, UAC나 시스템 파일 보호 등 도입으로 이전의 xp의 많은 트윅들이 막힌게 컸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당시의 Vista는 비교적 고사양이었기에 xp 쓰다가 비스타를 쓰면 성능 역체감이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Vista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 XP 강점기(?)가 지속되었던 적이 있었죠. Windows 7이 나오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그랬을 겁니다. (최적화 문제도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제 기억에 윈7이 더 가벼웠던 것으로 얼핏 기억함)
전반적으로 정리하면, UAC 도입으로 인해 현대 운영체제와 가장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 훌륭한 운영체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컨데 실제로 백신 안 깔았어도 바이러스 뚫릴일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던 비운의 그런 운영체제…
5. Windows Server 2008
잉? 왠 서버 운영체제? 하겠지만, 그 때는 해적질의 시대(낭만) + 일단 깔고 보자는 환장의 조합으로 인해, 일단 숫자가 높고 길어보이면 좋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Windows Server 2008이 그러한 녀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서버용 운영체제(…)에 대한 자각은 거의 없었지만, 뭐 IIS나 돌려볼까 해서 겸사겸사 설치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사실 서버용 운영체제라고 해도 일반 운영체제랑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있어서 … 결론은 그냥 버전이 높아서 기분이 좋았던 것 정도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6. 이후…
Windows 7이 지나고 윈도우 11이 되면서, 정말로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런 해적(?)질에 관심이 많이 사그라든 것을 느낍니다. 요즘에는 해적판은 커녕, 그냥 순정에 정품인증 안 하고 쓰는 걸 더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인 생각만 몇 개 적자면,
1) 향상된 저작권 의식
무려 2000년대 초반에는 “정품 돈아깝게 왜삼?” 이라는 의식이 평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불법다운로드가 많이 막히기도 했고 저작권 의식 자체가 올라오면서, 불법에 대한 거부감이라는게 생겼죠.
2) 과다하게 좋아진 하드웨어 / 순정이 최고다
예전에는 트윅이 눈에 띄게 효과가 있을 정도로 하드웨어 성능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외려, 순정세팅을 바꾸면 성능이 나빠지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순정 세팅 자체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점도 굳이 커스텀 해적판을 쓸 이유가 없게 만드는 것 중 하나일 겁니다.
3) 지속적인 업데이트
이전에는 윈도우가 별도 업데이트를 하기보다는 배포판을 하나 내놓고 새 버전이 나오면 계속 새롭게 사도록 했는데, 이제는 7부터 11까지 계속해서 업데이트로 지원을 해주고 있죠. 이러다 보니 굳이 해적판을 애써 구해가며 쓸 이유 자체가 많이 줄었습니다. 정 해적질 한다 해도 KxMxS 쓰는 게 전부지 않을까…
더 이상 예전처럼 새 운영체제 유출판이 나오고, 깔아보고, 다양한 해적판을 써보는 로망은 이젠 없네요. 해적 시대의 종결입니다. 그래도 이게 옳게 된 해피 엔딩이 아닌가 싶네요.
7. XP는 죽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운영체제 덕후(?)들은 계속해서 XP를 써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미 지원이 종료된 드라이버를 계속해서 우겨 넣는다던가, 소프트웨어를 우겨 넣어서 실행한다던가 등이죠. 실제로 One Core API 라던가, 기존 소프트웨어/드라이버를 XP용으로 변경한다든가 하는 등의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드라이버 팩을 통합시켜주는 윈도우 인스톨러 커스터마이징 트윅 툴도 존재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지만, 아마 Embedded나 저사양 컴퓨터에서의 실사용을 위함과, 혹은 단순 광기(?)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만큼 운영체제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게 아닐까요? NT 커널의 안정성과
이외에도 커스터마이징을 넘어서 수집가의 영역에 접어든 사람도 종종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보통 유출 빌드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아는 게 그닥 없어서 많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아마 예전 유출 빌드를 보면서 앞으로의 윈도우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기대하던 감정을 다시 살려보고자(?) 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예전보다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형태로 여전히 윈도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