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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3. 01:21 - lazykuna

인싸처럼 대화하기

아싸?

Intro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잘 못한다. 처음 보는 상대면 당연히 그렇지만, 잘 아는 친구라도 썩 대화에는 자질이 없다. 사실 이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랑 모이면 대화를 주도하는 건 보통 내가 아니었고, 설령 내가 대화를 하더라도 그닥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잘 알 수 있었다. 가끔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 어색한 침묵이 흐르더라도, 내가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정말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그 침묵을 그대로 즐기면서 가는게 최선이었다. 설령 내가 한 두마디 툭툭 던지더라도, 대화가 원할하게 이어질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상대도 대화에 능숙하지 않으면 금방 흐름이 끊어지기 일쑤였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렴풋이 이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딱히 고치려고는 해보지 않았다. 어차피 하는 일이 사람 접대하는 일도 아니고 대화도 많이 할 일도 없는 데다가 혼자 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신경쓰이는, 마치 머리에 난 한 두개 새치 같은 거다. 그래도 가끔은 인싸처럼 대화하는 게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긴 했다. 아니, 어쩌면 부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멀리 안 가도 인방에서 여럿이 재밌게 노는 것만 봐도 부러운 걸 보면, 결국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은 거 아닐까? 근데 이거 재능의 영역 아닐까? 적어도 나는 재능의 영역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음은 확실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유튜브가 재미있는 영상을 물고 왔다. "대화 잘하는 법". 호기심에 눌러본 영상은 꼬리에 꼬리를 타고, 순식간에 몇 십개의 탭을 점령해 버렸다. 주로 봤던 영상은 밑에서 이야기 할 심리학 분야 영상도 있었지만, 연애 관련 유튜브도 같이 보았다. 이성과 대화하면서 썩 자연스럽게 대화가 안 되는 경우도 많았고 심중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결국 그것도 대화 아니겠는가? 그러한 맥락에서 여러 영상들을 보았다. 특히, 제목에서 "~~이렇게 하는 방법" 같이 쓰여 있을때 내가 그 답을 머릿속에서 유추해 낼 수 없다면 그 영상은 정독하며 봤다. 비디오를 보면서 내가 느낀 점과, 어떻게 해야겠다는 내용들을 메모(Notion)에 써 나갔다.

그렇게 지칠 정도로 열심히 봤고, 결국 어찌저찌 일주일 정도 시간을 짜내서 보고 싶었던 내용을 다 보았다.

대화 잘하는 법?

영상을 다 봤고, 열심히 생각도 정리해가면서 봤지만, 대화를 잘하는 방법이 그렇다고 뾰족하게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태생적인 재능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재능이 없다고 해서 그 원리까지 모르란 법은 없을테다 ㅎㅎ. 노-재능의 입장에서 본 생각들을 짤막하게 적어본다.

감정에 솔직해지기, 그리고 기저의식

여러 영상들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솔직해지라는 것인데, 굉장히 갸우뚱한 이야기이다. 보통의 대화에서 솔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는가? 문제는 자신이 솔직하는 법을 모르는 건데, 이는 자신의 감정 자체를 모르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생각날 때마다 내가 어떤 감정을 지금 느끼고 있는지 마음 속으로 되짚어 보자.

가장 기본적인 감정부터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이 두개도 제대로 표현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지 한번 되짚어보자.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제대로 못 느끼는 건 아마 어렸을 때 자신의 감정을 부정받은 경험이 많이 쌓였기 때문일 수 있다. 결국 기저의식으로 이어지는데, 회피형 인간에 대한 심리학적인 내용이 많이 있어서 꽤 재밌었다 ㅎㅎ. (이건 뒤의 대화능력 수저와 연결됨)

관찰

대화에 문을 닫고 나면 상대에 대한 관심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즉 상대나, 자신에 대한 관찰을 안하게 된다. 상대가 누군지 관심도 없어지고 자신도 뭘 좋아하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까 상대에 대해서 궁금하지도 않게 되고, 물어볼 주제 자체도 없어지게 됨. 상대에 "Tag"를 만들어 놓는 연습을 해보자. 이건 아래의 질문형 대화나 시뮬레이션과 연계가 됨.

물론 전혀 모르는 상대와 대화를 시작할수도 있다. 그럴 때는 시각적 아이템부터 관찰하거나, 칭찬(=띄워주기)로 관찰을 시작하며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음.

질문형 대화

이건 결국 상대 "관찰"에 대한 연장선상이다. 단순히 평조로 말할 내용도 질문형으로 하면 내용을 잇기 좋다. 이때 단순한 단답식 대화보다는 질문식 어미로 물어보는 게 좋다. 이때 단순 "닫힌 질문"을 하는 것보다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는 열린 질문을 하는게 좋다. 이를테면 "소고기 좋아하세요?" 보다 "어떤 고기 좋아하세요" "고기 먹을때 어떻게 먹는걸 좋아하나요" 처럼 6하원칙 붙여서 물어보면 의외로 물어볼 것도 나올 대답도 많음.

좀 더 고급으로 사용하면 상대의 대답을 유도하거나 모순 찾아내기 까지도 쓸 수도 있어 보임.

... 이는 역으로도 중요한데, 질문을 들었을 때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보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의 의도가 단순 질문이 아니라 확인(=답정너), 드립 등 여러가지가 될 수 있으니까.

시뮬레이션

생각해보면 대화가 갑분싸가 되거나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논리적 도약이 일어났거나 전혀 공감되지 않는 주장, 혹은 주제의 갑작스런 전환 정도가 될 것이다. 이걸 보고 바로 맥락적 지수가 낮다고 한다. 되짚어보면 더 나은 답변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테면, 갑자기 주제를 바꾸는 대신에 "아까 이런 얘기 했는데~" 라면서 주제 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굴려보면서 내 부족한 맥락 지수를 높이는 연습을 해볼 수 있다.

경험 자체가 부족해서 시뮬레이션을 굴리기 곤란하다면, 여전히 도움받을 곳은 많다. 드라마나 소설 같은 컨텐츠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시뮬레이션 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장르 특성 상 과장이 꽤 있으니 적절히 걸러야 함.

여담으로 이게 바로 글만으로 소통을 배울 수 없는 이유다. 직접 영상을 보며 그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예시들을 보고 느끼며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그게 자기 것이 됨. 물론 아직 모른다, 수능 문제집 마냥 다양한 상황과 이에 대한 패턴을 모조리 유형별로 나누어 공부하고 문제 풀면 글만으로 배울수 있을지도?

대화능력도 "수저"다

본인의 선천적인 친화력도 있겠지만, 부모가 부정적인 경험을 계속 유발하거나 기타 등등 이유로 인해 자신의 솔직함을 잃어버리고 회피형이 되는 경우가 생각 이상으로 정말 많다. 결국 대화 잘하는 것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수저가 굉장히 크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은, 동수저를 쥐고 있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남 탓을 할 수만은 없다는 거다. 동수저를 받았더라도 자수성가하면 된다. 그렇지 못하고서 남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잘 생각해봐라. 이 말이 참 와닿더라.

그리고, 생각보다 이 사회에는 대화 수저를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사람이 아주 많다는 거다. 결국 상대와 대화가 안되는 건 내가 못나서가 아니고 너와 내가 모두 못났기 때문인거다.

사회는 냉혹해

부모님이 아닌 이상, 어떤 상대가 나와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싶으면 조용히 멀어지게 된다. 어떤 점에서 대화가 잘 안되고 불편한지에 대한 피드백은 일절 없다. 어떻게 보면 너무한데, 사실 이건 역으로도 똑같다. 나 같아도 상대랑 말이 안 통하면 대화하려고 하지 않을 테니...

시간 투자와 매몰 비용

아무리 저런 스킬들이 있다고 해서, 기본적인 시간 투자가 안 되면 사람 만들기 자체가 많이 어렵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범위 내에서 사람을 찾으면 매몰 비용의 오류가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그게 안 되면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할 듯.

그런데 위 내용의 "거리두기"와 연결지으면, 타인에 대해 시간 투자를 전혀 안하면 타인이 "거리두기"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라면 이걸 잘 생각해야 함. 사실 이건 기본적인 능력에 가까운 것 같은데 내가 더럽게 이걸 못하는 거 보니 재능이 전혀 없는 건 확실해 보임.

억지로 말하려 하지 말자

비는 오디오 채우겠다고 가끔 이것저것 주제 가져와서 말할 때가 있었다. 별로 도움되는 행위는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아 그렇군요~" 하고 맞장구는 쳐주는데 더 이상 대화가 진전이 안 된다. 현재 맥락을 고려하고, 상대가 무슨 반응을 할지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쪽이 도움된다.

인기있는 멘트나 드립을 억지로 치려고 하는것도 비슷한 사례같다. 상황이 어울리면 괜찮겠지만.

혹여라도 상대 반응이 별로라면, 좀 더 부가설명해서 상대가 반응할 수 있도록 유도해볼 수도 있긴 하다. 아니면 빠르게 주제를 바꾸던가.

꼭 대화가 잘될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대화가 잘 안된다고 그걸 오롯이 내 탓으로 돌릴 필요도 없다. 상대가 기본적으로 성의가 없을 수도 있는거고, 애당초 내가 시간이 없거나 흥미가 없어서 대화를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혼자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능력이고 거기에 가스라이팅 당할 필요는 없다.

하나 재미있는 건, 혼자 살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졌다면 그건 우울증이라는 이야기였다 ㅋㅋ. 병들고 나서야 바뀐다라, 결국 사람 본질은 안 바뀌는가 보다.

그래서, 좀 인싸같아졌나요?

예전보다는 대화 하기가 쉬워진 게 상대 의중을 파악하기가 좋아진 것 같다. 상대가 별 생각이 없으면 관찰하면 된다. 두개를 적절히 이용하니 예전보다는 대화하기가 확실히 편해졌다. 맥락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도 덜 할수 있게 됐다. 아마 "센스없다" 와 "인싸" 사이에서 좀 더 오른쪽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 듯 하다.

근데 위에서 쓴 것들 사실은 굉장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들이다. 되게 없는 걸 있는 척 포장한 느낌이 들어 민망해보이기도 한다. 뭔가 대단한걸 기대하고 이 글을 봤다면 실망을 금치 못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본디 재능도 없는 사람이 컴퓨터만 보고 일하다보면, 저런 당연한 이야기들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니까, 본디 센스가 부족한 나로서는 이게 최선인 것이다.

Links

  •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 개인적으로 굉장히 도움 많이 받았다.
  • 연애 유튜브(권승현 등) - 표면은 연애 가이드지만 결국 본질은 인간관계고, 그러한 점에서 보면 꽤 유익한 정보가 많다. 다만 위 링크가 굉장히 친절하고 달달한 음료 같다면, 여기는 날것 그 자체다. 혐오스럽거나 비난하는 어조의 말이 많고 요점보다는 다양한 예시나 시뮬레이션들 위주로 보여준다. 분명 괜찮은 내용들도 있지만, 내 기준에서는 내용이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여서 적극 추천하지는 않고 걸러 보면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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