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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31. 15:52 - lazykuna

가난의 되물림

오늘도 하수구같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흥미로운 글을 봤는데, 이에 대해 예전부터 생각하던 바가 있어서 글을 좀 써 봅니다.

저는 가난이 되물림된다고 강력하게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부유했던) 부자들은 평민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거라고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평민들이 부자들에 비해 오히려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서로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니까 접점이 있을리가 없고,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죠.

비록 아직 얼마 안 살았지만 ㅎㅎ,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점을 조금이나마 적어 봅니다.

부자들의 가난함과 평민의 가난함은 다르다

몇 년 전에 은마아파트 사는 지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본인이 가난하다고 항상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가난하다는 이야기가 “학창시절 용돈 만원에 국산차 두대, 부모님 공무원 맞벌이 800밖에 안 됨"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물론 거기는 부자 중 부자 동네니까 상대적으로 가난한 편인가보구나 이해는 하려고 했지만, 한두번도 아니고 그걸 내내 그러고 있으니 처음엔 어이가 없고, 나중엔 짜증이 치밀어올랐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제 어렸을 적 시절은 어렸을 때 용돈 받아본 적도 없고, 집에 차도 없어서 트럭 타고 경시 시험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식비 아끼려고 밖에서 밥 먹을때는 도시락으로 먹고, 외식은 나가본 적도 없었습니다. 옷도 딱히 사 본적이 없었네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게 보통인가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죠.

서로 만날 일이 없다면 괜찮겠지만, 그럴 수 없잖아요? 이렇게 서로 살아온 모습이 다른 상황에서 만날 때 — 특히 돈 관련해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누군가는 여행에 100만원 쓰는 것은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는 너무 많다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음식에 5만원 쓰면 맛있겠다고 기대하는 반면 누군가는 상상도 못할 사치라고 생각하고…

이렇게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점도 가난에서 벗어나는 데 어려운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유년기 시절 다져진 관념에서 벗어나 상대의 경제관념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 생각 이상으로 힘들어요.

부자들의 시간과 평민의 시간은 그 효율이 다르다

어릴 적 친구 중에 과학고 입시 준비를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친구 뭔지 몰라도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책을 보더라고요. 학교에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던 내용이었습니다. 이른바 하이톱이라고 하죠 ㅋㅋ…

대략 중학교 3학년 쯤이 되어서 저도 과학고라는 곳이 있다고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추천도 받게 되었습니다. 나름 공부를 했던 편이어서 가능했었지만, 딱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단순히 컴퓨터가 좋아서 정보올림피아드 수상도 해보고 그랬지만 하이톱 화학 같은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더라고요. 자습서로 좋다고 해서 샀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거 자습하는데 쓰는 물건 아닙니다 어떤 놈이 이런 헛소리를 한건지.

아무튼 잘 모르고 과학고 입시 들어와서 문제를 보는데 일반화학 문제를 물어보더라고요. 대학교 수준의 질문을 중학생한테 그대로 합니다. 풀리가 있나요. 그대로 떨어졌습니다. 그 친구는 입학했고요.

정보의 균등함에서도, 똑같은 시간 하이톱을 보더라도 부자의 효율은 절대로 따라올 수 없습니다. 20년간 과학고 입시 교육을 한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한시간 듣는 거랑 혼자 자습서 끙끙대며 한시간 보는 것의 가치가 동등하가도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공정하다고 강조하는 교육과정도 절대 공평하지 않습니다. 대치동이었다면 아마 수능 기출문제(혹은 유형)를 그대로 떠다 먹여 줬을 테니까요.

투자에 따른 기대 효과를 모르는 문제

효율이 다른 것은 정보의 문제에서 기반하는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류층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투자로 여겨지는 것들이 하류층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고,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흔한 예 중 하나가 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중상류층쯤 되면 기본적으로 좋은 의자 책상과 조명 세팅은 기본입니다. 근데 흔히 말하는 흙수저는 식탁책상에서 공부하거나, 책상이 있더라도 식탁의자같은 데 앉아서 공부하는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건 실제로 과외해본 경험에 따르면 전부 이런 경향을 보였습니다.

엉덩이 오래 붙이고 있어야 하는 공부의 특성상 의자가 나쁘면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효율만 떨어지면 다행이지 몸도 상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예가 잘 안 떠올라서 의자로 약간 억지 예를 든 것 같긴 한데, 분명 이러한 경향이 없잖아 있습니다. 이외에도 통근시간, 스트레스 조절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못 살수록 게으르다

아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면 잘 살수 있지 않아? 왜 열심히 안살면서 남탓을 하는거야 흙수저들은?” 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된 원인이 분명 있습니다.

해서 되는 게 없고,

전혀 시도를 해보지 않은 진성 답이 없는 부류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경우로 인해 그 시도는 좌초당합니다. 6070년대 같은 경우 부모님이 “공부는 무슨 일이나 해라"라고 일터로 떠내민 경우가 많고, 최근의 경우라면 경제난 때문에 진학포기와 같은 경우가 꽤 있을 것입니다. 혹은 유년시절에 계속된 가정폭력 등으로 인해 정신이 병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렇게 의욕이 꺾여버리고 실패의 아픔만 쌓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건 누구라도 동의할 겁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아무것도 안 하다 보니 할줄 아는 것 또한 없어집니다. 자격증 따기, 어학능력 점수 따기 등 스펙을 올리는 일을 알려줘도 “어차피 안 돼"라고 하려는 의욕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의욕이 없으니 길을 알려줘도 거기서 더 찾아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더라고요. 아니, 사실 이후의 방법을 어떻게 찾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을 가야 하는데 그러면 당연히 지도 앱을 띄워서 길을 찾아봐야 합니다. 하지만 저 정도의 사람은 “지도 앱"을 띄워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를 못하더라고요. 아마 환경에 따른 경험적 차이가 이런 차이까지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즉 재기를 위해서 처음부터 다 떠먹여줘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게까지 해 줄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부모님 아니라면 못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할 줄 아는게 없으니까, 할 것도 자연히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경우 시간을 버리거나 헛된 곳에 쏟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게을러 보이는 게 이 이유에서입니다.

감정 쓰레기통

이건 모든 부모가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여기 중 제일 약한 경향성을 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그렇더랍니다.

흙수저들은 경제적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부모가 성군이라면, 축하드립니다 적어도 아이는 정서적 결핍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닙니다. 무조건 부모님이 싸웁니다. 새벽에 소리지르고 던지고 깨지는 소리를 듣는 미취학 아동의 심정은 어떨까요.

그리고 그 감정이 그대로 아이에게 갑니다. 아이가 조금만 실수해도 그 소리지르는 게 그대로 가고, 부부싸움에서 쓰는 각종 혐오발언들이 그대로 갑니다.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거죠. 그런 아이가 의욕을 내서 열심히 살 수 있을까요? 있다면 아마 성군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기회의 차이

수저는 fallback을 보장해줍니다. 흙수저면 고시도 몇년 못치고, 심하면 생업도 같이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립니다. 금수저면 빵빵한 유명 강사 꽃아주고 문제 유출도 보고, 떨어져도 몇년이고 해도 부담이 없습니다.

당장 의대만 해도 흙수저에게는 빡센 등록금의 압박이 들어오고… 그 중 몇가지 생각나는 것을 적습니다.

은수저, 금수저들이 공무원을 많이 한다

수저에 따른 기회의 차이가 가장 큰 것중 하나가 전 공무원이라고 봅니다.

공무원은 박봉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 연봉이 세니까, 부모 재력이 되는 경우(특히 부모가 공무원인 경우) 많이 시키는 경우를 봅니다. 실제로 부모 재력이 지원되는 경우를 꽤 봤습니다. 근데 이건 제가 어떻게 자료를 제시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 그냥 그런가 보다고 일단 넘겨주세요…

하지만 공무원의 투자비용과 기회비용이 상당히 세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몇년간 낙방할수도 있고, 굳이 공무원할 실력이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요. 그 추가비용을 이제 집에서 얼마나 대줄 수 있느냐가 공무원의 관건이 됩니다. 그걸 잘 모르고 무작정 달려든 사람들이 이제 노량진 고시원의 유령으로 남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승진도 꽤 수저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건 제가 확실하게 쓸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보통 집안에서 잘 모르고 “부자들이 공무원 많이 하니까 너도 공무원 하면 부자야"라는 논지로 시키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저희 집만 해도 그랬습니다. 이미 더 나은 일을 해볼 수 있다면 절대 하지 마세요. 부모님은 의외로 경험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며 본인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습니다. 기술직이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

학군의 차이

학군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기회의 차이도 있습니다. 잘사는 동네는 양아치 비중이 확실하게 적습니다. 있어도 주먹이 날아가는 경우는 비교적 적은 편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거랑 별개로 학폭은 어디든 있습니다, 없다는 뜻은 아님!)

흙수저 동네는 다르다는 걸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체육복 도둑맞는건 예사고 (나중가면 본인도 체육복을 훔쳐야 합니다 ㅎㅎ 사실상 공공재가 되는데, 나쁘다고요? 천만에요, 안하면 호구입니다), 90%는 수업시간에 수업 안 듣고 앞친구 머리에 지우개 던지기, 핸드폰 게임하기, 몰카찍기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등 별의별 짓을 다 합니다. 이게 무려 학생인권조례전 모습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집중하기도 힘듭니다.

두 환경에서 주어지는 경험과 기회는 아주, 많이 차이가 있다고 전 분명하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분명 기회는 있다

위 내용들은 제 입장에서 본 “흙수저 되물림론" 입니다. 그런데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합니다. 그리고 분명 “흙수저”에게는 조금이나마 더 낮은 커트라인이 제공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입으로 따지면 지역균등이 있고, 대학교 장학금도 나오고, 심지어 입사시 자기소개서에도 가끔 어필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실력이 그래도 우선입니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리가 절대로 없으며, 많은 낙방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통 낙방 한두번 한다고 기회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실패했다면 피드백을 얻어가는 두 가지 작업을 성실하게 할 수 있다면 적어도 흙수저에서는 탈출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다만 금수저 따라잡는 걸 목표로 하지는 마세요. 앞서 말한 이유로 따라잡기는 커녕 격차 좁히기도 쉽지 않고, 자괴감에만 빠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종종 나오는 "성공신화"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반대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위 현실들을 무시한 채, 이를 소수 개인의 성공사례로 덧씌운다는 점에서 굉장히 싫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