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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3. 00:17 - lazykuna

내향적인 사람, 인터넷 유랑자, 그리고 일방적 소통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사람의 사교력을 분류하기 위해 내향적이냐 외향적이냐 분류를 하곤 합니다. 보통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것들이 분류의 기준이 됩니다.

요즘은 예전보다는 내향적인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남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에서 커뮤니티를 즐기는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이유야 다들 제각각이겠지만, 아무래도 큰 이유중 하나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정말 혼자 하는 여가활동을 즐긴다고 해서 내향적인 사람일까요? 그 중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경우, 정말로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터넷 커뮤니티는 분명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이게 내향적이냐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타인과 공감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식으로 “소통”하는 활동이니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외향적인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외향적”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게 다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쓸 수 있을 법한 대화의 형태가 아니거든요. 흔히 볼 수 있는 댓글 형태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비난”하는 댓글
  •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전개를 펼치는 댓글
  •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는 댓글 (ex. 누물보? 누칼협?)
  • 별 상관 없는 경험담(혹은 엉뚱한 헛소리)을 나열하는 댓글
    • 재미있는 건, 여기에 경험이 있는/공감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화가 또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엄근진한 대화 말고요…

 

인터넷의 어떠한 특성이 대화에 있어서 이러한 형태를 만드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은 점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 특정되지 않은 잠재적인 다수와의 대화
    • 현실에서는 다수와의 대화가 쉽지 않습니다 (많아야 5명? 그 이상이 되면 보통 대화 그룹이 쪼개지는 것 같네요. 이건 뭔가 사회과학쪽으로 관련 이론이 있을 듯?)
    • 또한, 주변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마이너한 주제로도 대화를 이어나가기 쉽습니다.
  •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
    • 일반적인 대화는 10초만 소통이 없어도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지만 인터넷 채팅/댓글은 몇 분, 혹은 시간이 지나도 이어집니다.
  • 혹은, 일방적인 대화
    • 굳이 반응을 바라고 쓰는 글이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어

이러한 모든 특성은 인터넷에 쓰는 글이 현실에서 같은 이야기를 할 때 보다 높은 확률로 반응을 얻게 만듭니다. 완전 헛소리만 아니라면 반응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 자연스럽게 나는 소통을 하고 있다고 나도 모르는 새 인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주제, 형태로는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별 생각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글을 쓰게 되는데, 이러한 대화는 보통 듣는이가 끼어들 여지를 잘 주지 않습니다. 듣는이에게 “어떻게 생각해” 하면서 공감을 요구하거나,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하면서 일부러 흐름을 끊고 대답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요소들이 없죠. 즉, 일방적 소통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터넷에서의 대화는 글쓰기에 가까운 성격을 가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따라서, 듣는이가 어떤 대답을 할 건지 인지하면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화”가 잘 되는 사람들의 특징이 대답하게 참 좋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걸 보면 더더욱 그러한 생각이 드네요. 이건 단순히 “말”을 잘하는 사람과도 다르고, “들어주기”를 잘하는 사람과도 또 다른 요소입니다. 이러한 생각 없이 말하다 보면, “너는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 같아”라는 소리를 듣거나, 대화가 자주 끊기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타인이 대화하고 싶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타인과 즐거운 대화를 하는 건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드네요. 🥲 하지만 인터넷이라면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뇌 비우고 글 써도 “대화”에 지장이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사람과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혼자서 즐기게 되고, 자신을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듭니다.

추가) 이 글은 조언이나 학술적 근거와는 상관없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을 글로 쓴 것입니다. 잘못된 내용이나 다른 이견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