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병신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그렇게 반평생을 게임과 함께해 왔습니다. 장르는 좀 편식이 있는 편이지만, 나름 RPG, 고인물(리듬)게임, 디펜스, 퍼즐게임 등등 이것저것을 많이 해 왔네요.
모두가 게임을 좋아하진 않지만,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도 그러한 사람 중 하나로서, 그동안 게임의 재미에 대해 느껴온 것들을 이제 써 내려갈만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나이들면 게임이 재미없다? — 게임 불감증
“철들면 게임 같은거 안하게 된다”는 말을 연장자로부터 얼핏 듣곤 합니다. 실제로 나이든 사람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정확한 비교가 어려운데, 정말로 그럴까요? 제 경험상, 실제로 어렸을때처럼 게임이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더 이상 잠을 참아가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게임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끝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은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뇌는 새로운 자극을 항상 원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뇌는 새로운 모델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기존 내부 모델을 확장해 나갑니다 [1] [2]. 하지만 게임은 장르가 있고, 비슷한 장르의 게임은 익숙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새 게임을 샀는데도 플레이 방식이 너무 익숙하고, 그 끝이 보이니, 도저히 손이 가질 않습니다. 익숙해진 게임은 더 이상 옛날만큼의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첫번째 가설은, 나이를 먹은 만큼 게임을 너무 많이 해 버려서 결국 게임이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의 사실에서 비롯되는 한 가지 가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게임 이외에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포츠 활동도 있고, 차를 운전하게 되면서 드라이빙에 새로운 재미를 붙이기도 합니다. 혹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사진 찍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도 하고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다른 취미가 생기면서, 게임은 더 이상 예전만큼 상대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하게 되어버릴 수 있겠죠.
그리고, 아무리 게임이 재미가 없더라도 “진짜”들은 계속하게 됩니다. 움직이려는 성질을 가진 관성은 멈추는 데 많은 힘이 필요하니깐요…
고인물 게임 이야기
3대 고인물 게임이 있습니다. 격투게임(철권) — 리듬게임 — 슈팅게임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게임이요. 이 게임들은 입문자와 숙련자의 난이도 간극이 무시무시해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많은 자들이 중도에 포기(?)하게 됩니다. 이른바, 뉴비들의 무덤이 가득한 게임들입니다.
유명한 그 짤…
그런데 이 고인물 게임들의 공통점은 바로 “패턴 파훼”에 있습니다.
- 격투게임: 콤보 암기는 물론, 상대의 행동에 카운터를 넣기 위해서 상대 스킬 프레임 손해를 파악하거나, 선모션을 파악하거나, 캐릭터별 콤보 박스를 파악하거나 등의 포인트를 “깨닫는” 데에서 재미가 옵니다.
- 슈팅게임: 보스의 선 모션을 보고 딜 타이밍을 잡거나 피해야 하는 꼼수 위치를 외우기도 하고, 미사일 패턴을 보고 피해야 할 길을 개략적으로 파악해서 살아남는 데 재미가 오겠죠?
- 리듬게임: 노트 하나하나가 아닌, 노트의 모양을 보고서 행동을 취합니다. 덤으로 리듬에 맞춰서 움직이는 원초적인 재미도 가미되는 게 있죠.
각자의 성질이 다를 뿐이지, 결국 공통점은 패턴 파훼를 통한 깨달음, 그리고 그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보상이 있습니다. 다만, 이 패턴 파훼가 비직관적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실력이 오르지 못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해 크나큰 장벽이 되어버리는 것이겠죠. 역으로, 이 패턴 파훼에 재미를 붙이면 게임의 재미는 끝이 없어지게 됩니다. 온갖 기믹을 개발하여 별 기행을 하게 되죠. 이른바 “유저가 컨텐츠를 만드네” 같은 행위를 하게 됩니다.
- 이거랑 비슷한 성질의 게임으로 요즘은 플랫포머 장르 게임인 것 같습니다. 은근 주류로 올라오고 있더라고요.
- RPG는 강해지는 것이 목표이자 재미를 주는 요소인데, 위 게임들보다 훨씬 직관적이라서 입문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이징 커브?
약간 이야기를 새 봅시다. 재미랑은 조금 관련이 없을 수 있지만, 올드 게이머들에게 중요한 또 한가지 요소는 “에이징 커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노화로 인해 실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게임이 재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제 경험상으로는 아직까지는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몸을 쓰는 펌프 같은 게임을 해도 아직까지는 실력이 늘어나는 게 보이기도 하고요. 다만,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가 조금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낭설이 도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나이를 먹으면서 옛날처럼 “절박하게”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게 됩니다. 돈도 있고 시간도 (학창시절 때보다는) 있기 때문에, 굳이 안되어도 될 때까지 타임어택 식으로 비틀면서 게임을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안되면 그냥 포기하고, 다음에 하지 뭐,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 자체를 낮추는 태도가 “에이징 커브”로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태도 자체도 어쩌면 에이징 커브라고 봐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 저 너머로…
게임을 평생 하며 여생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 따른 결론은 그렇게는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사람은 “새로운 무언가”를 하지 않고서는 즐겁게 살 수 없는 모양입니다. 게임의 재미에 필적하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나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명시적으로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 동안에도 새로운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게임 (엔진) 만들기, 기계 오르골 설계 (진행중), 노트북 스티커 도안 만들어보기, 기타랑 드럼 배워보기, 헬스 조져보기, 안 가본 곳으로 여행 가보기 … 아마 본능적으로 이를 느꼈을 것입니다.
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스포츠를 도전해 볼 수도 있고, 위의 내용들을 더 깊게 파 볼 수도 있고… 아무튼, 제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한번 올라간 역치는 더 이상 내릴 수가 없으니까요.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체 불균형 상황 및 극복 내역 기록 (0) | 2023.04.16 |
---|---|
대화 (0) | 2023.04.14 |
헬스 5년차 회고록 (1) | 2023.04.05 |
내향적인 사람, 인터넷 유랑자, 그리고 일방적 소통 (0) | 2023.04.03 |
붉은 여왕과 상대성 이론 (0) | 2023.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