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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14. 23:01 - lazykuna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사진 출처: 교보문고

최근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또 이루 말할수 없이 바빴다. 회사 일도 그랬고, 스스로가 벌인 일로도 그랬고, 더불어서 공부하고 싶었던 것으로도 그랬다. 그 세개의 할 일들이 얽히고 섥혀 밤에 잠이 들기 직전까지 책을 읽거나 코드를 작성하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그러한 작업을 다시 잠들기 전까지 반복하는 일상이 거의 매일 올해 반년 넘게 지속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별도의 포스트로 써 봐야겠다.

아무튼, 그러한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는 항상 “내가 가야 할 길이 여기가 맞나?” 라는 큰 그림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고, 동시에 자본주의의 차가운 벌판 위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잘 해오고 있다고 스스로 지금까진 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안내서”를 찾는 여정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 오고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그 여정의 일부이다. 단순 책 안에 들어간 “안내서”라는 말이 지금의 내 상황에서 흥미를 돋군 것도 없잖아 있지만, 일단 유명했고, 또 [일론 머스크]가 이 책을 읽으며 인생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 또한 내 관심을 촉발했다.

나는 4챕터로 구성된 합본을 읽었다. 전자책으로 읽었기에 책이 얼마나 두꺼운지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으나, 상당히 두꺼운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하루 거의 한 권 분량씩 읽어치웠는데도 거의 5일 가까이 걸렸으니 말이다. 코믹한 SF 공상 소설이라는 가벼워 보이는 접근과는 달리 철학, 복선, 패러디, 개연적이지 않은 듯 개연적인 내용 등등 허투루 쓴 듯 허루투 쓰이지 않은 내용들의 집합이라 이 책을 깊이있게 즐기기에는 난이도가 한참 있는 것 또한 적잖은 요인 중 하나일 듯 하다. 책의 유명세와는 달리 난이도가 꽤나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물론 유명하고 재미있는 어구들만 책에서 찾아 읽어보는 것도 일단은 좋은 접근법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여러번 읽으며 그 깊이를 늘려나가는 것도 가능해 보이긴 한다. “당황하지 마세요”, “안녕, 그리고 물고기들은 고마웠어요” 라던가.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그 개성이 충만하고, 과장될 정도로 어이없는 설정들이 붙은 것이 일단 영국식 유머를 즐긴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인터넷 도파민으로 점철된 나에게는 빵 터지며 그것들을 읽는 것이 아쉽게도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재미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동시에 그 연장선상에서 “블랙 코미디”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인플레, 관료주의, 자본주의, 등등 … 너무 많아서 잘 기억을 못 하겠다. 이외에도 앞서 말했듯 클리셰, 혹은 철학적 사상에 기반한 내용들도 의외로 많이 있다. 이를테면, 좀 큰 층위에서 보았을 때, 아서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어서 자신이 죽지 않은 거라는 걸 아는 “전지적 시점”이라던가, “42”라는 답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meta-질문”으로의 새 층위의 도입이라던가, 시간여행에서 닭이냐 달걀이냐 문제나 “시제”의 문제라던가, 등등. 그리고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한 무개연성과 동시에 복선을 끔찍할 정도로 맛있게 회수하는 개연성. 개인적으로 복선 회수하는 부분이 일품이라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껴졌다. 나 이런거 좋아하는구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가이드”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가이드”는 풍자의 대상에 가깝다. “가이드”의 내용이 쓸모가 있던 적이 책에서는 손에 꼽기 때문인데다가, 가이드에 들어가야 되는 내용은 끝도 없이 편집당해 뭉텅이로 날아가고, 가이드의 출판사는 초심을 읽어버리고 적대적 관계로 치닫으니깐 말이다.

어쩌면, 보다 높은 관점에서 보면, 아서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당황하지 마세요” 라던가, “불편을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를 보고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거나, 어떤 현상을 “안녕 그리고 물고기들은 고마웠어요” 라고 해석해 본다던가 하는 태도를 가이드로 제시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관점이라면, 이 책은 정말 유용하고 도움이 된다. 비꼬는 거 아니라, 하루에도 수두룩한 예측 불가능한 이벤트를 맞서 싸워가는 사람이라면 이 마인드는 정말 도움이 된다. 또 “42”와 같은 “정답”만을 맹목적으로 찾아가려는 사람에게도 이 책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어렵겠지만). 더불어서 라무일라 행성에서 소소하게 살아가는 아서를 보며 같이 진정되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그런 일상으로의 가이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삶에 대한 가이드가 아닐까. 그래도 그 중 어떤 가이드를 선택할지, 최종 선택은 여전히 내 몫이다. 음… 어렵네.

판타지 소설만 열심히 읽어댔는데, 이것도 비슷하지만 약간 “건강한 맛”으로 오래간만에 나름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읽은게 조금 아쉬울 뿐이다. 당분간은 책 읽기 말고 다른 것들을 좀 해야 할게 많아서 … 정리되면 또 뭔가를 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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